가수 심신 과거 대마초 마약 사건 및 강수지 결별 사유

 

 

가수 심신이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합니다.

심신은 1990년대초 ‘오직 하나뿐인 그대’ ‘욕심쟁이’ 등의 히트곡으로 KBS ‘가요톱텐’에서 6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가왕 조용필을 꺾을 정도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 바 있죠.

 

이날 심신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그룹 '퀸'과 자신이 비슷한 사연이 있다며,

가수로서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해준 고등학교 시절 밴드 '버닝스톤즈'의 리더 윤희현씨를 찾아 나선다고 하는데요.

 

 

 

 

 

 

 

고향이 대전이었던 심신은 어렸을 적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과 관심을 갖고 있어서 서울예고 진학을 꿈꿨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1993년 대전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하는데요. 고등학생시절  우연히 학교 축제에서 공연 하던 교내 밴드부‘버닝스톤즈’의 무대를 보게 되었는데, 그때 비로소 음악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버닝스톤즈' 공연을 보고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이 바로 무대라고 생각했다”는 심신은 오디션을 통해 ‘버닝스톤즈’ 멤버로 합류해 가수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심신은 프레디 머큐리가 로컬밴드를 찾아갔듯 ‘버닝스톤즈’ 밴드를 찾아가 오디션에 응시했고 고등학교 3학년 선배들을 제외하곤 유일한 1학년 멤버로 합격해 밴드의 보컬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이후 ‘버닝스톤즈’는 방학이 되면 전국 여러 지역을 돌며 무대를 찾아 나섰고, 특히 1983년 겨울, 심신을 제외하고 졸업을 앞뒀던 다른 멤버들은 본격 취업을 위해 나이트클럽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고 하는데요. 

 

군산에 있는 나이트클럽 오디션에 낙방 후 배를 타고 대천해수욕장까지 온 멤버들은 겨울 한산한 대천 바다 앞 나이트클럽에서 본격적인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로지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집을 나섰던 10대 밴드 ‘버닝스톤즈’의 나이트클럽 생활은 녹록치 않았고 박봉에 먹을 것이 없어 대천 앞바다 썰물 때 작은 소라를 줍거나 말린 오징어를 서리해 먹기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심신은 배고팠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순수했던 그 시절이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회상합니다.

심신은 “매일같이 함께 연습하며 동고동락해 모두 친형 같았다”며 특히 팀의 리더로서 정신적 지주였던 리더 윤희현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가슴 벅찬 밴드 생활도 잠시, 심신은 ‘버닝스톤즈’ 멤버들과의 오해로 홀로 팀에서 탈퇴해 이별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심신 - “방학을 맞아 먼 타지역까지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마침내 대천해수욕장에 위치한 나이트클럽 오디션에 합격해 실전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그때 음악에 대한 열정하나로 가출까지 해가며 대천으로 향했는데, 개학을 하고도 학교에 돌아가지 않아 아버지가 대천 숙소까지 찾아오셨다” 

 

이내 심신을 잡으러 오신 아버지에게 잡혀가 하루아침에 멤버들과 생이별을 했다고 합니다. 

심신 -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희현 형의 따귀를 때리신 것도 같다”

 

 

이에 MC 김용만, 윤정수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제보해 줄 깜짝 게스트를 초대해 심신을 놀라게 했는데요. 

깜짝 게스트는 “도대체 심신의 아버지가 어떻게 알고 숙소에 찾아오셨는지 의문”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깜짝 게스트는 “심신은 잘생기고 노래도 잘해 인기가 많았지만 4차원이었다”며 심신이 밴드 내 여자 보컬과 썸(?)을 탔던 사실까지 폭로해 심신을 당황케 했다고...

 

 

 

 

 

 

 

아버지의 반대로 갑작스럽게 밴드와 헤어지게 된 심신은 또다시 ‘버닝스톤즈’를 찾아갔으나 리더 윤희현은 냉담하기만 했다는데요. 

심신 - “희현 형에게 거절당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소외감과 서운함을 느꼈다” “마치 이혼 당하는 기분이었다”

당시 심신은은 서운한 마음에 그 후로 멤버들과 연락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추억의 ‘버닝스톤즈’에서 탈퇴 후 35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심신과 밴드 ‘버닝스톤즈’ 멤버들. 

과연 심신은 자신의 뿌리와도 같은 ‘버닝스톤즈’ 멤버들과 리더 윤희현과 재회할 수 있을지 '티비는 사랑을 싣고'에서 확인 할 수 있겠네요.

가수 심신은 1990년대초 데뷔하자마자 가왕 조용필을 누를 정도의 신드롬적인 엄청난 인기를 누렸었죠.

록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큰 키와 잘생긴 외모로 특히 젊은 여성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는데요.

또한 심신하면 바로 떠오르는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가수 강수지와의 열애와 마약(대마초)사건이라 할 수 있을텐데...

가수 심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심신 프로필을 간략히 살펴보자면,

 

본명은 심신입니다. 청송 심씨. 포털에 '심신 뜻'이라고 연관검색어가 붙던데, (沈信)이름 한자풀이해보시면 될듯... 심신은 청송심씨 28세손 규(揆)자 항렬로 족보상에는 규태(揆泰)로 되어있다고 하는데, 족보상과 호적상 이름이 다른 케이스.

심신 나이. 생년월일 1967년7월29일생으로 올해 나이 53세 (※ 참고로 강수지도 1967년생으로 동갑내기입니다.)

심신 고향. 대전광역시 중구 출생

심신 키. 183cm/73kg, 혈액형 B형

심신 학력 : 대전선화초-대전상업고. 중경공업전문대학 공업디자인학과

심신 가족 사항 : 3남중 장남으로 출생. 부인. 아들 심동헌, 딸 심혜원

심신 종교 : 개신교

심신 소속사 : 마로니에 엔터테인먼트

 

 

심신은 어린시절 선화초등학교 4학년때 어린이 밴드부에 가입하는데요 밴드를 하면서 '베릴라'라는 악기를 처음 연주하게 되었고 성악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이탈리아의 테너(tenor) 마리오 린자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감명을 받아 오페라 가수의 꿈을 가지기도 했었다고 하네요.

이후 심심은 성악을 전공하기 위해 서울예술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삼았지만, 집안의 반대로 예술고등학교가 아닌 대전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음악 정체성이 바뀌게 됩니다.

학교 축제 때 그룹사운드 선배의 공연을 보게 된 심신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록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고, '버닝 스톤즈(Burning Stones)' 라는 스쿨 밴드에 들어가 베이스 연주를 하면서 처음으로 기타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후 심신은 1986년 대학에 진학하면서 6인조 하드 록 밴드인 '외인부대'의 보컬로 활동하다가, 상경 후 ‘위대한 탄생’의 김택환이 이끄는 팀에 잠시 합류했었고, 이후 박수창에 의해 '바람과 구름'의 리드 보컬로 발탁되면서 명동을 중심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습니다.

음악적 활동과 더불어서 '코오롱 자스민'의 모델로 발탁되어 본격적으로 패션모델로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8등신의 키와 커다란 눈, 호남형의 얼굴로 주목받으며, 이종원, 김응석, 심혜진, 이응경 등과 모델계의 떠오르는 샛별로서 이름을 알립니다.
단기 사병 근무 중 대전시 유성구에 위치한 클럽에서 음반사 담당자의 눈에 띄게 된 심신은 1990년 10월 팝 발라드곡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로 데뷔하게 됩니다.

 

 

 

 

 

 

 

데뷔곡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 의 히트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심신은, 이후 빠른 템포의 후속곡인 ‘오직 하나뿐인 그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10대의 우상으로 급부상하게끔한 명곡이 되었습니다. 수려한 외모와 가창력,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는 청소년들에게 열광적 반응을 이끌며 당시 신승훈, 윤상등의 발라드가 주류를 이루었던 국내 가요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꽃미남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던 그가 무대 위에서 만큼은 마초적인 매력을 뿜어냈고, 대중을 사로잡는 반전 포인트였습니다.

심신이 긴 다리를 흔들며 ‘그대여’를 외칠 때면 전국의 소녀 팬은 열광했고, 즐겨 입던 롱코트와 선글라스는 새로운 패션문화를 선도하며 전국에 유행처럼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오직 하나뿐인 그대' 노래의 간주에 맞춰 추던 쌍권총 춤은 영화 《영웅본색》의 주윤발을 연상케 하였고, 심신의 패션, 춤, 퍼포먼스, 노래 등 모든 것이 유행이 되었습니다. ‘심신 신드롬’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심신은 ‘오직 하나뿐인 그대’의 빅히트 기세를 이어 기타 사운드가 주가 되는 2집 앨범 <친구도 될 수 없잖아>를 발매하는데, 복고풍의 록 장르가 가미된 노래 ‘욕심쟁이’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습니다. 기존에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었던 권총 춤과 더불어 ‘한 발 두 발 춤’이 포인트 안무가 되었고, 의상 또한 블랙으로 통일시켜 팬들로 하여 강렬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심신은 가죽 재킷을 유행시키고, 대한민국 패션 중심지였던 명동의 유행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가요계에서 록 음악이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것은 1970년대 신중현의 '미인', 1980년대 산울림과 윤수일 이후 10여 년 만에 있는 일이었다고...

 

 

하지만 한창 인기 절정이던 심신은 동료 여가수 강수지와의 열애 사실이 언론을 통해 기사화되면서 뜨거운 감자가 됩니다. "동료 가수일 뿐이다"라는 심신의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각종 루머에 시달리게 되는데요. 그 여파로 후속곡 '성격 차이'는 차트에서 이전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고, 그 뒤 공개한 ‘성격 차이 2’는 음악방송 차트 상위권에 진입 하면서 인기 반전에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곡의 히트보다도 스캔들이 더 쟁점이 되면서 활동에 고초를 겪게됩니다. 그 후 '아픔이 노래가 되어' '미처 생각을'을 끝으로 돌연 활동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심신 강수지 열애, 결별

 

 

1990년대 초반 심신 강수지의 열애는 굉장한 센세이션이었습니다.

두 사람 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1991년 심신 강수지의 데이트가 사람들에게 노출이 되면서 열애설이 퍼졌고, 1992년 3월에는 결혼설까지 번지게 됩니다.

이에 심신과 강수지가 각각 입장을 발표하게 되는데요.

 

 

심신 - "(강수지와) 좋아하는 감정이 계속되다면 결혼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다만 너무 바빠서 올해 안으로는 결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결혼하게 된다면, (난) 자상한 아빠가 될 것이다."

강수지 - "서로 사랑하는 감정이 솟아 교제해왔을 뿐이다.(결혼설은 터무니없다.)"

 

참고로 강수지 성격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면,

강수지는 굉장히 청순하고 나약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사실 그녀의 성격은 그렇지 않죠.

강수지의 곱상한 외모에 숨겨져 있지만, 강수지는 강단이 있는 성격입니다.

 

 

 

강수지 -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성공해야 우리가족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강수지 - "23살 때 단돈 100달러를 들고 한국으로 가출을 시도했다. 당시 인신매매 뉴스가 많이 나왔는데 정말 무서웠다. 하지만 친척들한테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강수지 - "돈이 떨어져, 미국 이민 시절 '대학가요제'에서 만난 탤런트 송승환에게 연락을 했다. 당시 송승환 선배님이 ‘가수가 되고 싶으면 서울로 와 연락하라’고 했었다. 그런데 '진짜 오빠가 해줄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고 날 가수로 키워줬다."

송승환의 소개로 강수지는 윤상을 만나서 '보랏빛 향기'란 곡을 받게 됩니다.

 

 

 

 

 

 

 

 

강수지가 십대때부터 생활고를 겪었고, 이십대 초반에 겨우 100달러를 들고 가출을 했을 정도로 강단이 있는 성격이었던 것 같네요.

강수지 - "변집섭의 공연 보러가서 어떤 남자를 봤는데 그 사람의 느낌이 너무 강해 집에 와서 쓴 일기가 ‘보랏빛향기’가사가 됐다. ‘보랏빛 향기’외에도 ‘시간 속의 향기’를 내가 직접 작사했다."

보랏빛향기는 좋은 멜로디와 노랫말 덕분에 아직도 명곡중의 하나로 꼽히는 노래입니다. 강수지의 재능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죠.

 

 

강수지가 말한 '보랏빛 향기'의 주인공이 바로 심신입니다.

강수지 - "그 남자와는 보랏빛향기 노래가 히트치고 난 후 사귀었다. ‘시간속의 향기’도 그 남자의 착한 눈빛을 생각하며 썼다. 내 눈엔 그 눈이 너무 예뻤다. 추억으로 남았지만, 20대에 가장 순수했던 사랑이었다."

보통 인기 절정의 여가수의 경우는 연애를 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강수지의 경우 1991년 당시 인기 절정의 심신과의 열애설이 나자, 강수지는 바로 교제 사실을 인정합니다.

당시만해도 흔치않는 용기있는 공개열애 선언이었는데요.

 

하지만, 심신 강수지 열애 때문에 안타깝게도 두 사람다 이미지와 인기에 타격을 입게 됩니다.

죄근에는 연예인들이 공개열애를 하는 경우가 많고, 팬들과 대중들이 관대한 시선으로 보고 응원하는 경우도 많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죠. 연예인의 공개연애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 많았고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강수지의 남성 팬들은 많이 사라졌고, 심신 팬들이 강수지의 안티로 돌아서게 되었죠.

 

 

결국 1993년 6월 심신 강수지는 결별하게 됩니다.

모 연예 기자: "지난(1993년) 2월 두 사람이 괌으로 여행을 다녀와서 결혼 루머가 더 커졌다. 하지만 최근 사소한 말다툼으로 감정이 나빠졌다."

모 연예 기자: "게다가 두 사 모두 바쁜 스케줄로 자주 만날 수 없어 거리감이 생겼고, 서로의 성격차이로 갈등이 많았다. 결국 사소한 말다툼이 큰 갈등으로 번졌고, 두 사람은 최근 전화로 "헤어지자"고 말했다. 이후 이 사실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알려졌다."[심신 강수지 결별이유]

 

 

 

 

 

 

심신 마약(대마초) 사건

 

강수지와의 연애 스캔들로 큰 고초를 겪으면서 활동중단까지 했던 심신은,

1993년에 6개월간의 노력 끝에 3집 <Rock &Roll Is Music Now>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신예 작곡가였던 주영훈과 미국에서 기획하고 만든 앨범이었는데요. 기존의 스캔들이 확대해석 되는 것에 대해 우려도 있었지만, 강한 비트의 하드락 장르 곡인 '갈망'으로 인기가 건재함을 증명했습니다.

 

 

 

이어 <심신과 FF밴드>를 결성, 처음으로 아카펠라를 시도한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고, 그 후 콘서트를 성황리에 끝마친 심신은 이듬해인 1994년 KBS 드라마 《인간의 땅》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의 재능을 인정받고 활동 범위를 차츰 늘려갑니다. 1995년도에는 MBC 삼일절 특집극 《노래 만들기》에서 주연배우로 캐스팅되며 인기가수 한요섭역으로 대중들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러던 중 1995년 2월 대마초 상습 흡연 혐의로 구속되면서 연예 활동의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카오디오 대표의 구속으로 출연작 ‘노래 만들기’의 첫 촬영장에서 갑작스레 연행되는 불운을 맞은 심신은 인터뷰에서 '단순한 호기심으로 피웠다'며 깊은 반성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1996년, 심신은 결혼과 동시에 호주로 떠나 유학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골드코스트와 멜버른 등을 오가며 현지 연주자들과 재즈바에서 음악적 견문을 닦은 호주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주었습니다. 결혼 생활에도 안정이 찾아왔고 가장 자유롭고 평온했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심신 가족, 심신 아내, 아들, 딸

 

그렇게 2년여를 호주에서 보낸 심신은 1998년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당시 한국의 IMF 금융 위기와 맞물려 후원자를 찾지 못했던 신예 그룹 <문트라이브>의 김영, 유태진, 김지훈과 함께 의기투합하며 4집 앨범 <Dejavu>를 발표했습니다. 심신이 직접 디렉팅에 참여할 정도로 야심 차게 준비한 앨범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소속사와의 마찰로 인해 조기 사장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에 심신은 포기하지 않고 2001년 동아기획을 통해 5집 <리베로>를 발매. 지난 <Dejavu>의 전곡을 재수록 하고 앨범명과 곡명을 바꿔 재발매한 것이었는데요. 

그러나 심신에게는 또 한 번 대마초 구속이라는 역경이 찾아옵니다.

 

이에 심신은 좌절하지 않았는데요. 2003년 KBS 주말드라마 《보디가드》가 흥행하면서 OST로 삽입된 심신의 곡 '쿨하게'도 인기를 끌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후에는 미국 시애틀로 건너가 재즈 음악을 공부했고, 2007년에는 방송 해금과 동시에 발라드 '그림자'를 발표했습니다. 차트에서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남성들의 애창곡으로 자리 잡으며 그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9년 발표한 '내 사랑 영순'은 tvN의 인기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의 OST로 삽입되었습니다. 

이후 심신은 공연을 통해 꾸준히 팬들과의 만남을 이어갔고, 2011년 4월에는 심신 특유의 애절하고 허스키한 보이스가 잘 드러나는 발라드 '아프다'를 선보였습니다.

 

 

 

2013년에는 심신의 3집 앨범 수록곡인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녀'가 영화 《미나 문방구》에서 두 가지 버전으로 리메이크되었는데, 이는 대중에게 가수 심신을 또 한 번 각인시키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 진출설이 들려오면서 다시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최고의 인기 스타에서 진정한 가수로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심신. 지치지 않고 끝없이 도전하는 그이기에 가수 심신이 보여줄 또 다른 음악 세계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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